세계 여성의 날과 결혼 기념일 (2022.03.08.화요일)
며칠 전부터 도미랑 3월 8일에 뭐할지 생각했다. 이 날은 세계 여성의 날이기도 하지만 우리 결혼기념일이기도 하다. 시청에서 받아 온 날짜에 한 거라 완전 우연이다. 작년엔 뭘 했더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결혼기념일이라고 뭘 특별하게 한 것 같진 않은데 도미 말을 들어보니 선물 받고 놀고 그랬나 보다. 뭐 어쨌든 나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올 해는 조금 다르다. 왜냐면 3주년이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독일인 배우자와 결혼해서 3년을 넘기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 나의 관심사는 비자다. 우리의 결혼은 처음부터 비자 문제 때문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실눈을 뜨고 보는데 시청 직원이 아니어도 가족이라도 그렇다. 쟤네 정말 사랑해서 결혼하는 거 맞아?
나랑 도미는 학교 같은 과에서 만나 결혼 전까지 6년을 사귀었다. 그 중 2년은 동거도 했다. 하지만 둘 다 결혼 생각은 없었다. 사람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왜 법이 필요해? 어릴 때 학교 가정 시간이었나? 선생님이 결혼은 00이다의 빈칸을 채워보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구속이라고 적었다. 엄마는 아빠를 만나지 않았으면 더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학교에서는 외국인이 독일인과 결혼해서 비자를 받는 것을 뭔가 편법을 쓰는 듯하게 보는 사람도 있었다. 다른 과의 한국인 남자는 독일인이랑 사귀면 어때?라고 일면식도 없던 나에게 소문을 듣고 와서는 대뜸 이렇게 물어봤다. 어쨌든 졸업하고 1년 뒤 나는 도미와 결혼하기로 했고 이건 나중에 안 사실인데 엄마는 울었다고 했다. 결혼은 싫다던 애가 그렇게 한국으로 오기가 싫은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다고. 엄마는 내가 커리어 우먼이 되어 살기를 바랐다. 결혼해서 애까지 낳으면 더 좋지만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유학 가서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괜찮은 사람 만나는 게 중요한 거라던 삼촌 말도 떠오른다. 그땐 화가 났지만 지금 생각하면 도미는 내가 학교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이긴 하다.
어쨌든 결혼식도 간소하게 시청에서 혼인신고하고 가족들과 하루 종일 맛있는거 먹고 놀았던 게 다였다. 그래도 흰색 드레스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원피스를 입고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어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그래서 결혼하니까 어떠냐고 묻는다면 시댁과 친정 없는 결혼생활은 나쁠거 없다 이다. 도미네 가족들과는 교류는 있지만 의무는 아니고 친정 식구들은 바라는 게 많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서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실 동거할 때랑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오히려 그때는 원룸에서 부대끼며 살아서 서로 힘든 점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나마 각자 방 하나씩 쓰면서 정말 좋아졌다. 그리고 논비건 비건 커플인 것 치고 꽤 괜찮은 동거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집에서는 거의 비건으로 먹는다. 도미가 가끔 유제품을 먹을 땐 잊지 않고 한 마디씩 하는데 이제는 기분 상하거나 하지 않으면서 인지만 시켜 주는 방식으로 한다. (도미 직장에 베지테리언과 비건들이 꽤 많아서 그 영향도 많이 받고 있다.ㅋㅋ)
어쨌든 세계 여성의 날이 결혼 기념일인 것이 좀 아쉽다거나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날도 있었지만 지금은 결혼을 했건 하지 않았건 아이가 있건 없건 자궁이 있건 없건 인간동물이건 아니건 가부장제 사회에서 부딪히는 한계와 문제들에 대항해서 싸우며 하루하루 버티는 모든 이들을 위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고민하고 결정하고 할 일을 하자. 그리고 소소하게 행복도 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