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Place Or Mine
학교 다니면서 도미네서 동거한 게 1년 정도 되나? 내가 1년 먼저 졸업하고 기숙사를 나오게 되면서 잠시 신세를 진다는 게 길어져 크지도 않은 방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잘도 같이 살았다. 정말 많은 추억이 있는 장소지만 다시 그렇게 살라면 음, 글쎄... 결혼 후 처음 우리의 힘으로 집을 구했을 때, 아주 작은 집이지만 너무 기뻤다. 제법 큰 방 하나, 작은 방 하나, 화장실, 부엌, 발코니 3개 그리고 모든 방들을 잇고 현관문으로 이어지는 작은 공간까지 이게 다였다. 보통은 큰 방을 거실로, 작은 방은 침실로 쓸 테지만 당시 우리는 둘 다 각자 자기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 중요했고, 결혼하긴 했지만 네 것, 내 것 구분이 확실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큼직한 짐이 많은 도미가 큰 방을 쓰는 대신 식탁도 큰 방에 두기로 하고, 나는 작은 방을 쓰는 대신 온전히 내 사적인 공간으로 쓰는 걸로 합의를 봤다. 그래서 컴퓨터 책상도 두 개, 침대도 두 개, 책장도 두 개, 다 두 개였다. 특히 당시 우리 둘의 생활패턴이 너무 달랐어서(둘 다 집에 있어도 겹치는 활동 시간이 12시간이 미처 되지 않았다. 각자 따로 자는 게 편했는데 이건 동거할 때부터 그랬다. 그렇게 2년 3년 지내면서 나름 안정된 삶을 살면서 어느 날 하루 1인용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잤는데 끼여서 자도 그게 좋았다. 그전에도 가끔 같이 자긴 했지만 이번에는 뭔가 느낌이 달랐다. 사람 온기가 나쁘지 않은데? 도미의 모부집 도미 방에 있던 좀 더 큰 침대를 가져왔다. 2인용까지는 아니고 1.5인용 정도 되는 폭이다. 그래도 좋다고 그때부터는 매일 같은 침대에서 잤다. 전에는 소파에서 나누었던 자기 전 이야기를 침대에서 나누었다. 내 것과 네 것의 경계도 흐려졌다. 내 방에 있는 침대는 커다란 소파처럼 쓰였고, 점점 이 집의 공간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 구조를 바꾸면 어떨까?"
사람들 사는 모습이 비슷하다면 거기에도 이유가 있다. 방이 두 개일 때 한 방은 거실로 쓰고 한 방은 침실로 쓰는 것에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내 방에 침대 두 개를 붙여 넣어서 킹 사이즈 침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도미 방에 내 작업공간이 들어갔다. 컴퓨터용 책상과 공부용 책상을 어느 한쪽이 노출되지 않는 각도로 놓았다. 가구를 들어낸 자리에 3년 넘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쌓여 있던 먼지들이 보였다. 잃어버렸던 코바늘도 찾았다. 쇼파의 위치도 바꾸어 앉으니 같은 공간이 다르게 보였다. 바꾼 방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손님이 와도 침대를 노출시키지 않을 수 있다. 오는 손님이 거의 없고 가까운 사람만 오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역시 사적 영역은 좀 보호할 필요가 있다. 내 작업 공간 벽에 붙어 있던 도미가 붙여 놓은 포스터와 그림들을 떼어 내고, 침실에 붙어 있는 내 그림들과 작은 피규어들을 내 작업 공간으로 옮겼다. 말차 맛과 초코 맛이 마블링된 케이크처럼 우리 집도 내 방, 네 방이 없이 우리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물론 작업 공간만큼은 안되지 그럼. 서로 각자의 일을 하면서도 같은 공간에 있는 느낌이 좋았다. 헤드폰을 써서 소음 문제도 없고, 스피커를 써야 할 땐 서로 활동 시간이 겹치지 않는 시간대에 하는 걸로 했다. 그리고 규격화의 장점. 서로 다른 브랜드의 침대인데 길이가 같아서 그냥 붙여 놓아도 모양새가 전혀 이상하지 않다. 큰 침대란 좋은 것이구나. 같이 거리를 두고 누워서 요가 동작을 하며 느꼈다.
넷플릭스에 <유어 플레이스 오어 마인>이라는 리즈 위더스푼 주연의 로맨스 영화가 있다. 다른 도시에 살지만 오랜 기간 친구로 지내던 남녀가 서로의 집에서 일주일 간 머물면서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몰랐던 사랑의 감정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다(크엑걸의 배우들이 나와서 너무 반가웠다. 보고 싶었어ㅠㅠ. 가볍게 보기 좋은 영화라 추천). 나는 이번에 방 구조를 바꾸면서 나와 도미의 관계도 전과 달라졌음을 느꼈다. 그리고 생활공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절대 무시할 수 없겠단 생각도 했다. 동시에 같은 공간이라도 분할과 배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는 것도. 만약 우리가 3년 뒤에도 이 집에 살고 있다면 그땐 공간을 어떻게 나누어 또 같이 쓰고 있을까?(그때는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간 상태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