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 텃밭 일지/2023년

드디어 5월이 왔다!

돌멩이 2023. 5. 3. 18:38

창 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달리 나가면 바람이 차다.
왼쪽부터 6가지 다양한 고추 씨앗을 심어 봤는데 그 중 3가지 종류에서만 싹이 났다. 맨 오른쪽에 깻잎 씨앗을 뿌렸는데 하나도 안났음.
한국에서 온 애호박 씨앗을 심어봤다. 한국산은 맛이 유럽 주키니보다 달다.
도르트문트에서 온 노랑 토마토. 빨리 분갈이하면서 깊게 심어야 튼튼하게 자랄 텐데 집 안에는 그만한 공간이 없고, 바깥은 아직 춥다.
오레가노와 레몬타임. 위로 웃자라는 애들을 빨리 잘라서 먹어줘야 옆으로 풍성하게 자라기 때문에 열심히 먹고 있다.
3월 말부터 발코니 텃밭을 개장한 씨앗들. 시금치, 쑥갓, 열무, 상추 등이 사진 속에 보인다.

 

아직 바람은 차고 어떤 날은 심지어 번개도 치는 궂은날도 있지만, 하늘 파랗고 햇살 좋은 포근한 날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3월에 집 안에서 키운 모종들을 빨리 발코니 텃밭에 내놓고 싶어 드릉드릉하는 중이다. 도르트문트에서 온 토마토들이 꽤 크게 자랐는데 작은 화분이 적어서 한 화분에 씨앗을 여러 개 심었더니 이걸 분갈이할 때 어떻게 나누면 좋을지 고민이긴 하지만, 애호박도 잘 크고 있고, 저번에 외국인청 다녀오는 길에 사 온 고추들도 아주 조금이지만 몇 개 싹이 났다. 그저 내게 제일 중요한 깻잎이 싹을 내지 않아서 슬프다. 씨앗이 오래된 걸까?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잘 커서 걱정 없었는데 여차하면 올 해는 깻잎을 못 먹게 생겼다. 3월부터 이미 발코니 텃밭에 뿌려둔 시금치, 쑥갓, 양파, 파, 열무, 상추 등은 잘 크고 있다. 부엌 발코니에는 딜과 고수 씨앗을 뿌렸는데 너무 많이 뿌려서 솎아내느라 혼났다. 아직도 빽빽해서 더 솎아내야 한다. 파슬리와 민트는 겨울 추위를 잘 견딘 후 요즘 아주 한창이다. 잘 먹고 있다. 이번에 바질 씨앗을 못 사서 모종 구하려고 갔던 꽃집에서 바질은 못 구하고 오레가노와 레몬타임을 샀다. 이것들은 아직 화분에 있는데 봐서 날이 정말히 풀리면 텃밭 호흐베트에 옮길까 한다. 

 

어제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집에 와서 완전 뻗었는데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 생각보다 일찍 눈을 떴고 푹 잘 자서 개운했다. 역시 약간의 육체활동이 귤잠자는데 제일 효과적이다. 오늘은 알바도 없고 흙 관리하기 딱 좋은 날이다.ㅋㅋㅋㅋ 

 

나는 부엌에서 요리하면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 대부분 채과 껍질-를 꽤 큰 호흐베트에 마른 흙과 함께 모은다. 겨울에는 날벌레 걱정이 없어서 그냥 뒀는데, 날이 풀리면 벌레들 때문에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일단 여름 용으로 마련한 뚜껑이 있는 큰 통도 있기는 하다. 비료 만들기는 사실 시간이 다 한다. 음쓰 한 번 버리고 마른 흙 한 작은 삽으로 덮어 두면 바람도 쐬고, 햇살도 비도 맞으면서 자연스럽게 향긋하고 양분이 풍부한 비료가 된다. 겨울에는 오래 걸려서 미쳐 비료화되지 못한 것들은 여름 내 뚜껑 덮어서 혐기성으로 보관해 놓으면 되고, 여름에는 진행이 빠르기 때문에 벌레만 조심하면 될 것 같은데 이건 올여름이 지나고 나서 자세히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작년 여름에는 작은 통에 모아서 모이는 대로 뚜껑 있는 통에 옮겨서 비료 화했었다.) 

 

이제 모종들 발코니 텃밭 데뷔 일정에 맞춰서 빈 화분들에 흙을 채워 놓아야 해서 내 비료통을 봤고, 어김없이 내가 버린 채과 껍질의 형태는 온 데 간 데 없고 촉촉하고 짙은 색의 흙만 있었다. 아, 짜릿해. 흙을 한 번 전체적으로 뒤집어서 공기를 넣어 주고 굵은 나뭇가지는 빼고 고운 흙만 화분에 담았다. 작년에 화분들을 뒷마당에 둔 덕에 흙 속에서 지렁이가 간혹 보였다. 감사한 일이다. 비료 만들기를 체계적으로 대량으로 한다면야 체에 거르고 고온에 한번 건조해서 벌레 알들을 죽이고 그래야겠지만 내가 쓰기에는 자연 바람과 햇볕으로도 충분하다. 덜된 부분이 있어도 그 부분은 남기고 다른 부분을 쓰면 그만이다. 이렇게 화분에 담은 흙은 해가 좋은 날 일주일 정도 바깥에 두면 혹시나 미처 덜 진행된 비료의 독기가 빠져서 아직 여린 모종들이 뿌리내리기 좋은 흙이 된다. 나는 이런 식으로 2년 전부터 흙이나 비료를 따로 사지 않고 여러 채소를 키웠다. (물론 내가 키우는 작물들이 키우기 쉬운 것들인 것도 있지만ㅎㅎㅎ) 

처음 발코니 텃밭을 만들면서 흙을 사야 했을 때 그것이 이상하다고 느꼈던 이유는 확실히 알았다. 내가 산 비료 한 포대 값은 마땅히 한 개인에게 주어져야 했을 땅과 시간, 자연조건의 값이었던 것이다. 이것들이 기후 위기로 인해 벌써부터 갈수록 쉽게 얻기 힘든 것이 되고 있는데 이대로 진행될 미래를 상상하면 나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진다. 

 

부엌과 연결되어 있는 발코니. 여기 한켠에 비료통을 두었다. 나무통에 음쓰를 버리고 그 위에 작년 흙을 뿌린다.
이 나무통(호흐베트)는 내가 직접 만들었는데 다음에 다시 만들 기회가 온다면 절대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그냥 나무로만 만들어서 밑에 물 구멍을 뚫는 식으로 만들 것이다. 새 침대 매트리스를 사면서 생긴 커다란 플라스틱 포장재를 썼더니 풍화되어 아주 못쓰게 되었다.
흙 때깔 좀 보소. 흙이 되는 과정을 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곰팡이에 대한 다른 시각을 얻는 것은 덤.
이렇게 4개의 큰 화분에 흙이 가득 찼다. 1-2주 뒤면 모종들이 여기에 뿌리를 내리고 자랄 것이다.

 

올 해는 뒷마당에 있는 텃밭의 작은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서 화분이나 호흐베트가 아닌 노지에서도 작물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여기에 깻잎을 심으려고 했었는데 이대로 모종을 얻지 못한다면 뭘 심으면 좋을지 생각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