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기

자전거를 타고

돌멩이 2021. 1. 31. 22:20

나에게는 독일에서 9년 가까이 탄 못생긴 자전거가 있다. 아무리 요리조리 살펴봐도 어느 한구석 멋스러운 데라곤 없는 실용성만 갖춘 자전거. 언젠가 파트너가 이름이 뭐냐고 묻길래 대충 '델피'라는 이름을 지어 줬지만 영 어울리지 않는다.) 델피는 내가 아무 물건에나 잘 붙이는 이름이다. 돌고래 인형도 델피, 기타 이름도 델피.)

 

나는 자전거를 아주 늦게 배웠는데 한국에서도 탈 수는 있었지만 오로지 직진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커브를 돌려면 내려서 자전거 방향을 돌려야 했다!) 한적한 공원에서 기분만 낼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독일에 와서 친구의 집주인(Gastvater)이 자전거를 여러 대 가지고 있어 함께 베를린 도시를 타고 돌아다니던 것이 연습이 되어, 커브도 돌고 손잡이에서 손을 떼어 겨우 수신호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베를린은 자전거를 타기에 그리 좋은 도시라고 할 순 없다. 물론 한국에 비하면 도로가 잘 되어 있긴 하지만, 사람도 차도 많은 거리에서 능숙한 사람이 이끌어 주지 않았다면 나 같은 초보는 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뉘른베르크는 도시긴 해도 한적한 편이라 학부 생활 내내 통학을 자전거로 했고, 전시 물품을 1시간 거리를 자전거로 달려 운반하기도 했다. 여름에는 수영하러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로 놀러 가고 페스티벌을 즐기고 친구들을 만나러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길 내리막길 가리지 않고 달렸다. 그땐 비가 내려도 눈이 내려도 겁도 없이 참 잘 달렸었다. 

 

델피는 내 첫 자전거는 아니지만 처음 벼룩시장에서 샀던 자전거를 2년 만에 잃어 버렸고(도둑 맞았고), 델피를 첫 자전거를 샀던 판매자에게서 비슷한 모양과 크기로 구매했기 때문에 첫 자전거나 다름없게 인식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니 그 판매자 훔친 자전거를 수리해서 되파는 사람인 것 같다.) 어쨌든 델피와 같이 한 시간이 워낙 길기도 하고, 지금도 통학길이 아닌 출퇴근길을 함께 하고 있다. 기어는 고장 났고, 벨은 녹슬었지만 펌프질만 제 때 해주면 쌩쌩 날아갈 듯 잘 달린다. 힘들게 눈 떠서 출근하는 때면 기어도 작동하고 안장도 좋고 바퀴도 큰 새 자전거 생각이 나기도 하지만 퇴근할 때면 그런 마음은 사라진다. 아무래도 정이 들었나 보다. 최근에는 몇 달을 미루고 미루다가 펌프질을 했는데 그 다음날 깜짝 놀랄 만큼 잘 나가서 굼뜨다고 욕했던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다. 미안한 마음에 델피에게 바치는 만화를 그렸다. 앞으로 자전거 타면서 보는 풍경들, 생각들을 네 컷 만화로 남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