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흐베트(das Hochbeet) 만들기
올해는 많은 종류를 심지 않겠노라 그렇게 다짐했건만 마트 입구에 진열된 씨앗봉투를 보면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마침 한국에서 3월에 택배를 보내주시겠다 하여 미나리, 깻잎, 쑥갓 씨앗도 받아 놓은 상태고, 딜, 바질, 파슬리 같은 온갖 종류의 허브들과 고추도 꼭 심어야 했다. 그리고 작은 무의 씨도 샀다. 사실 무보다는 열무를 길러서 열무비빔밥을 먹겠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심고 싶은 작물 수가 늘어서 작년에 산 화분의 양으로는 어림도 없게 생겼다. 그리고 내 방과 붙어 있는 발콘과 부엌 쪽 발콘은 작아서 이미 포화상태다. 파트너 방에 커다란 발콘이 있는데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해가 오래 들지 않고 처마가 없다는 이유로 작년에는 비워 놨었다. (지금 우리가 쓸 테이블과 의자만 둔 상태다.) 하지만 올해 내가 깻잎을 너무 많이 파종해서 생긴 모종들을 반은 내 방 발콘에 반은 파트너 방 발콘에 한번 시험 삼아 심어보기로 했다. 만약 잘 자란다면 내년에는 다른 종류도 심어 볼 수 있겠지?
어쨌든 그래서 파트너방 발콘에 화단을 만들어야 하는데 화분보다는 호흐 베트라고 한국어로 직역하면 높은 화단? 정도 되는 걸 놓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는 내 방에 하나, 부엌에 하나 이렇게 두 개를 사서 썼는데 300유로 넘는 돈을 냈다. 올 해는 코로나 때문에 택배 대란이 있기도 하고, 조금 찾아보니 내가 직접 만들면 두 개를 만들어도 100유로 안에서 가능할 것 같아서 휴가 때 만들어 보기로 했다. 호흐 베트는 나무나 강철을 이용해서 만들거나 돌을 쌓아 만드는 법이 있는데, 나는 가장 쉬운 나무로 만들기로 했다. 디자인은 독일의 한 유튜브 채널 영상을 참고했다. (youtu.be/GeGWGgFHORU)
0. 호흐베트 크기와 자리 정하기
-해가 뜨고 지는 방향을 고려해서 그나마 길게 햇볕을 받을 수 있을 것
-내가 일하기 수월한 동선 확보할 것
-깻잎을 키우기에 충분한 크기와 깊이로 만들 것
위의 세가지 조건을 고려해서 필요한 재료를 준비했다.
1. 필요한 재료 준비하기(호흐 베트 1개)
-나무판자(가문비나무):
Leimholz Fichte 80x40x1.8cm(가로 x 세로 x 두께) 2x
Leimholz Fichte 40x40x1.8cm 2x
-나무기둥(가문비나무):
Rahmenholz Fichte 4.4x4.4x50 4x
Rahmenholz Fichte 4.4x4.4x40 4x
-나사못
4mm x 50mm 8x
4mm x 35mm 8x
-바니쉬(코팅액)&붓
-톱&클램프&작업대
-전동드릴&전동 드라이버
-커다란 비닐&타카
2. 바니시 바르기
조립하기 전에 미리 바니시를 2회 이상 발라 주세요. 그러면 조립 후에 바르는 것보다 힘이 덜 들어요. 제가 사용한 바니시는 한 번 바르고 15분 후면 마르더라고요. 바니시 사용 후에는 꼭 통 뚜껑을 닫아주세요. 안 그러면 다 공기 중으로 날아가버려요. 그리고 방 안에서 작업하신다면 꼭 환기시켜 주세요.
3. 조립하기
나무판자(40x40x1.8cm) 하나에 나무기둥(4.4x4.4x50cm) 두 개를 먼저 위아래로 고정시켜 주세요. 그다음 긴 나무판자 두 개를 고정시켜 위아래가 뚫린 상자 모양을 만들고, 바닥면에 나무기둥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박습니다. 나사못을 박을 때 전동드릴 2.5mm짜리로 구멍을 먼저 낸 후 드라이버로 나사를 박아 주었어요.
4. 비닐 씌우기
비닐을 나무틀의 크기에 맞게 잘라 타카로 나무틀에 박아주세요. 저는 작년에 매트리스 샀을 때 포장재로 쓰인 비닐을 버리지 않고 보관해 둔 게 있어서 그걸 썼어요. 비닐 사용을 피하고 싶으시다면 두꺼운 천을 이용하셔도 될 것 같아요. 물론 천은 시간이 지나면 썩을 테니까 갈아줘야겠죠.
5. 구멍 뚫기
호흐 베트를 원하는 자리에 위치시키고 흙을 조금 넣어주세요. 그리고 바닥면 비닐에 6개의 구멍을 뚫어 주면 완성입니다!
완성된 호흐 베트 안에는 퇴비화 진행이 덜 된 흙과 작년에 흐고 남은 영양분 없는 흙을 섞어서 부었어요. 마지막에는 마른 흙을 덮어 줘야 냄새가 안나요. 이 흙은 한달에서 두달 정도 가끔씩 삽으로 뒤집어 주면서 관찰할 예정이에요. 퇴비화가 잘 진행된 흙은 악취가 안나고 향긋한 냄새가 나요. 음식물 쓰레기 형태도 알아볼 수 없고 짙은 검은 빛이 돌면서 촉촉합니다. 부디 쥐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상황을 지켜봐야겠네요.
호흐베트 만들기 재밌었어요! 중간에 근육통으로 한 번 고생하긴 했지만 무리하지 않고 2일에서 3일 여유를 가지고 작업한다면 만드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어요. 특히 첫 번째 호흐 베트는 파트너 도움 없이 오롯이 저 혼자만의 힘으로 완성해서 더 뿌듯했답니다.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것들이 있긴 한가 봐요. 파트너 방에 있는 발콘에서 깻잎이 잘 자라준다면 내년에는 1개나 2개 더 만들고 싶기도 하네요. 그러면 퇴비가 완성된 후 다시 그 과정을 기록한 것들을 정리하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