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가는 길(2022.02.21.월요일)
우리 집 근처에는 슈퍼가 많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작은 마트와 청과점이 있고 자전거 타고 10분 거리에는 내가 일했던 대형마트와 유기농 마트가 있다. 그런데도 도미는 부러 더 먼 곳에 있는 마트에 간다. 학교와 기숙사 사이에 있는 곳이라 학생일 때는 자주 다니던 곳이다. 지금 사는 집에서는 자전거로 2-30분 정도 걸리려나? 나는 집 근처 마트가 10분 거리여도 어느 길로 가야 최단거리로 갈 수 있을까 생각하는데 도미는 왜 굳이 먼 곳으로 가는 걸까? 바로 가는 길에 있는 숲 때문이다.
1차선 도로 옆으로 커다란 숲이 있는데 차는 못다니는 좁은 폭의 오솔길이 있다. 주로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과 자전거가 다닌다. 예전에는 내가 이 길을 참 많이도 오고 갔다. 기숙사에서 당시 도미가 거주하던 집으로 가려면 이 길을 거쳐야 했다. 날이 어두워지기라도 하면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자전거 불빛에만 의존해서 가야 하기 때문에 잔뜩 긴장을 하고 달렸던 기억이 난다. 도미는 이 길을 아주 좋아한다. 숲 냄새가 좋다나 뭐라나. 우리가 처음 좋아하는 마음으로 만나서 데이트를 했을 때도 이 숲길을 걸었다. 한 여름이었는데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나온 나는 처음에는 살짝 당황했지만 어스름한 저녁 숲길에서 본 반딧불이와 서로 맞잡은 손의 감촉이 너무 좋아서 아름다웠던 풍경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도 굳이 먼 길을 가고 싶진 않은데. 내가 오늘 장 보러 간다니까 자기도 같이 가자 한다. 대신 숲길로 가자.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어제와 마찬가지였다. 바람이 사정없이 나무의 머리칼을 쥐고 흔들었다. 자전거 타도 괜찮을까? 이 정도는 문제없어. 나는 반신반의했지만 아이고 그래, 좋다고 했다. 나와보니 다행히 자전거가 날아갈 정도는 아니었다. 좁은 길 나를 마주보고 달려오는 자전거도 이제는 능숙하게 옆으로 피할 수 있다. 전에는 부딪힐까 무서워 매번 멈춰 섰다. 이 길 참 오랜만이다. 차도 사이에 얇은 나무가 한 길 나있을 뿐인데 정말 공기가 다르다. 숲길을 빠져나와 보니 전에 누가 살까 싶던 옷가게가 있었던 곳에는 우체국이 생겼고 오래 비어 있던 작은 건물은 공사 중이다. 조금 더 가서 오른쪽에 우리가 가는 마트가 있다. 체인점이지만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규모가 작은 마트다. 필요한 물건들을 찾는 시야에 낯익은 얼굴들이 걸린다. 여전히 여기서 일하시는구나. 물건들을 계산대 위에 두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우리를 본 계산하시던 직원이 눈을 찡긋하신다. 역시 낯익은 얼굴이다. 우리 차례가 되자 직원 분이 안부를 물으셨다.
"오랜만이에요!"
"그렇네요, 잘 지냈어요?"
도미가 마트에 다녀올 때마다 캐셔 분이 내 안부를 묻는다고 했던게 기억났다. 반가웠다. 곱슬머리가 특징적인 도미와 달리 나는 잘 알아보는 경우가 드문데 신기하기도 하고 나도 반가웠다.
"도미, 앞으로 나도 종종 여기 마트로 올까봐."
도미가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