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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행(2022.09.08. 목요일)일상/일기 2022. 9. 9. 02:56
강릉 가시연생태습지공원에서 도미가 찍은 연꽃 사진 8월 8일에 가서 30일에 다시 독일에 왔으니 20일이 조금 넘는 짧은 시간을 한국에서 알차게도 참 알차게도 보내고 왔다.
분명 가기 전에는 여러 결혼식과 여행 준비로 인한 스트레스, 아직 해결하지 못한 학교 지원 문제 등이 겹쳐서 여행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는데, 또 막상 가니까 오랜만에 보는 가족들도 반갑고, 결혼식도 어쨌든 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무사히 잘 해내서 그 후에는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도미랑 여행 다니고 가족들이랑 놀고 몇 안 되는 지인들도 만나고 그랬다. 나보다 9일 뒤에 온 도미는 무려 한국에 온 지 3일 만에 결혼식을 치러야 해서 힘들었을 텐데 그런 기색 없이 잘해줘서 고마웠다. 한국은 두 번째 방문이라 가족들도 한국도 전보다 훨씬 편하게 대하는 게 느껴졌다.
끝날 것 같지 않던 학교 지원 문제도 가닥을 잡았다. 애써 독일어 시험에 합격해 놓고 한심하게 원하는 과 지원 시기를 놓쳐서 공부를 내년으로 미뤄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여기저기 도움받아가며 백방으로 알아본 결과, 아직 지원 가능한 다른 과로 진학을 일단 해놓고 전과하는 방법을 택했다. 실용수학과 물리를 배우는 과인데 프로그래밍도 배우기 때문에 처음 1년 준비를 잘하면 전과할 때 새로 시작할 필요 없이 2학년 과정으로 인포마틱을 배울 수도 있어서 오랜 고민 끝에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안되면 내년에 1학년부터 다니면 되고 그것도 안되면 다른 학교에 지원하면 되지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1년을 혼자 집에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학교에 다니면서 배우면 뭐라도 더 배우겠지 싶은 마음도 있었다. (혼자 공부할 자신이 없다.) 솔직히 아직도 이게 내가 원하는 방향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는 않지만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
어쨌든 한껏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남은 여행을 즐겼다. 원래 서울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까지 놀다가 강릉에 가려고 했는데, 미대 재학시절 함께 공부했던 분이 대구에서 전시회를 연다고 해서 그분이 서울로 온다는 걸 우리가 대구로 가겠다고 했다. 그분은 한국에서 독일어 전시 통역 알바를 하다가 큐레이터 분을 만나 결혼까지 하셨다고 한다. 지금은 작가로서 입지를 다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았다. 전시를 보니 학부 때 하던 작업을 계속 발전시켜서 하고 있었고, 쉽지 않았을 텐데 멋지다고 생각했다. 다른 분은 학교에서 일하고 또 다른 분은 지역 예술가 공동체를 만들었다 하고... 나랑 꽤 친하게 지냈던 한 분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언젠가 바를 오픈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정말 서울에서 잘 나가는 바를 그것도 여러 개 경영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듣고 나니, 다들 한국에 들어와서 열심히 잘 살고 있는 모습이 대단하고 왠지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지금부터라도 잘해보고 싶어. 도미는 어떤 마음일까?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유독 도미가 조용했다. 그래도 자기가 원하는 쪽 일을 하겠다고 극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자기 작업을 하고 싶어 하는 걸 알아서 신경이 쓰였다.
강릉에 가서는 원없이 바다를 보고 즐기고 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커서 걸어서 다니기는 무리였지만 경포해변에서 버스 하나를 타면 강릉 볼거리를 얼추 다 볼 수 있었다. 도미가 제일 좋아했던 곳은 에디슨박물관이었다.ㅋㅋㅋㅋㅋ 이름만 들으면 뭔가 허술해 보이는 느낌이 있는데(나만 그런가?) 평이 좋길래 말없이 따라갔고, 정말 재밌었다.ㅋㅋㅋㅋㅋㅋ 축음기의 역사부터 에디슨이 발명하고 만든 온갖 것들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게 너무 좋았고 마침 시간이 맞아 설명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옆에 있는 월드 베스트 영화 박물관ㅋㅋㅋㅋ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나중에는 간략하지만 영화의 역사와 영상 장비들도 구경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모은 것들이라는데 이런 삶을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싶었다.
여행하면서 약간 당황했던 건, 식당에 비건이 먹을 음식이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저번에 부산에 갔을 때는 그래도 비건 맛집이 꽤 있었는데 강릉에는 없어도 너무 없었다. 첫날 갔던 비건 옵션이 있던 식당 말고는 거의 전멸이었다. 하루는 거의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미리 잘 알아보고 갔어야 했는데... 다음부터는 서울 아닌 다른 곳 여행할 때는 식당들을 미리 확실히 알아보고 가야겠다. 아님 아예 서울에 좀 오래 있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직 도미는 이태원 쪽이나 홍대, 강남 쪽은 잘 모르니까. 사실 이제껏 인사동 일대만 주구장창 다닌 것 같다. 미안;;
가족들은 저번에 난리 친 것도 있고, 너무 오랜만에 보는 것 때문인지 어쨌든 이번엔 먹는 문제로 갈등을 빚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엄마가 차려 준 몇 첩인지도 모를 한식 채식 밥상에 너무나 감동해버렸다. 그리고 조카의 성조숙증 문제를 계기로 유기농 먹거리를 구입해 먹는다더니 플라스틱 문제와 기후위기 문제에도 경각심을 갖고 육식도 플라스틱 소비도 줄이기 위해 나름 노력한다고 나에게 계속 어필했다. 나는 그때마다 너무 멋지다며 계속 엄지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나도 너무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그런지, 습한 공기마저 너무 친숙하고 애틋하게 느껴졌다. 특히 여름에 한국에 온 일이 거의 없어서 한국 여름 특유의 풍경과 냄새가 너무너무 좋았다. 시끄럽게만 느껴졌던 매미 소리도 습한 공기에 찐득해진 피부도 다 좋았다. 그러다가 그린 벨트 지역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나 태풍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자리들을 볼 때면 착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국에 살면 어떨까? 지금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 조금 더 오래 머물다 가고 싶기는 하다. 1년 정도? 1년은 한국에 살고, 1년은 독일에 살면 어떨까? 그럼 매년 비행기로 왕복하는 것보다는 탄소배출도 덜 할 수 있고... 거주가 자유로울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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