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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점장과 비둘기
    일상/일기 2021. 1. 10. 10:05

    오늘은 오전근무라서 새벽 6시에 마트에 도착했다. 주변은 온통 깜깜한데 마트의 커다란 입구에서만 환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비몽사몽 간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직원 전용 출입문으로 들어가려는데 건물 위 쪽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서 보니 비둘기가 건물 좁은 틈 사이에서 큰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버드스파이크(Tauben Spikes)가 안그래도 좁은 틈 사이에 설치되어 있어 비둘기가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동물협회에 전화를 걸어 구조요청을 해야겠단 생각과 일단 빵집 오픈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일단 들어가야겠다 싶어서 문을 여는데 지점장 얼굴이 딱 보였다. 안그래도 저번에 10분 정도 지각한 일이 걸려서 뼈가 실린 농담을 들은 터라 뭐 됐다 싶었지만 태연한 척 인사를 건넸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비둘기 이야기를 꺼냈다. 

     

    "비둘기가 틈 사이 스파이크에 끼어서 시끄럽게 울더라구요. 혹시 한 번 봐줄 수 있나요? 동물협회에 전화해서 구조요청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점장은 알겠다면서도, 도처에 널린게 비둘기고 아마 병아리 우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했다. 나는 큰 날개를 봤다고 그런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살짝 귀찮아 하는 것 같았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으니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빵집으로 들어 갔다. 

     

    빵집에 들어 서니 빵 자르는 일을 이미 시작한 안디와 파노(가명)가 보였다. 빵 자르는 소리가 날카로웠다. 가벼운 인사를 마친 뒤 비둘기 이야기를 꺼냈다. 

     

    "아휴, 안타까워라. 나도 그런거 잘 못봐."

     

    안디는 소름 돋는다는 제스쳐를 잠깐 취한 뒤 다시 빵 자르는 일에 몰두했다. 나도 오픈 시간에 맞춰 준비를 끝내려면 서둘러야 했다. 빵차를 꺼내 빵을 굽고 포장하고 진열대로 옮겼다. 2시간이 후딱 지나 있었다.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나는 물 한모금을 마시며 한숨 돌렸다. 그러고 나니 비둘기 생각이 났다. 지점장이 확인을 했을까? 전화로 물어 보기는 좀 부담스럽고 우연히(?) 마주친다면 자연스럽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동료에게 양해를 구하고 지점장이 있을 만한 곳을 둘러 보았고 금방 마주쳤다. 마트 내에서 물건을 나를 때 쓰는 Hubwagen을 끌고 있었다. 나는 비둘기는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다. 

     

    "정확히 어디서 봤는데요? 비둘기 아니어도 할 일이 많아요."

     

    역시, 아직도 보지 않았구나. 지점장은 귀찮아 하면서도 나와 함께 가보자고 했다. 가는 내내 비둘기가 마트에게 얼마나 성가신 존재인지 설명했다. 밖에 나가서 해가 난 상태에서 보니 새벽에 본 비둘기가 스파이크 위에 튼 둥지 안에 아기새들과 함께 있었다. 다행히 죽지 않았구나. 안도감과 함께 뾰족한 철심이 박혀 있는 곳에 있는 아기새들을 보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지점장은 역정을 냈다. 

     

    "우리가 저 비둘기 때문에 들인 돈이 20,000유로에요."

     

    지점장이 주차장 천장에 엉성하게 설치되어 있는 그물망을 가리키며 말했다.

     

    "동물보호협회? 그런 곳에서는 와봤자 도움이 안돼요. 먹이나 뿌리고 비둘기 개체 수를 더 늘리기만 한다고. 나도 동물의 친구Tierfreund에요. 하지만 여기 비둘기들은 아주 골칫거리라고. 저기 바닥에 떨어진 배설물 보이죠? 저기 세균이 득시글해요. 언젠가 내가 저놈들을 다 쏴 죽이고 말거에요."

     

    마지막 문장은 꼭 나한테 하는 말 같았지만 딱히 타격감은 없었다.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지. 

     

    "저기 손님들 다니는 입구 근처인데 혹시 비둘기가 죽어서 시체 썩은 내가 나면 어떡해요. 당신이 아는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살짝 흥분한 듯한 지점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말했다. 그리고 나를 자르지 말아 주세요.

     

    비둘기들이 도시에 살게 된 건 순전히 인간의 요구 때문이다. 아주 옛날 로마시대에는 고기로 먹기 위해서, 관상용으로, 전시에는 연락통으로, 현대에는 평화의 상징으로 온갖 행사에 쓰이면서 비둘기의 개체 수가 급격하게 늘었다. 그래 놓고 이제는 불결하다며 철심을 박아 내쫓으려 하다니. 개체 수 조절은 먹이를 통해서 불임시키는 방법으로 하고 있다고 들었다. 무조건 쏴 죽인다거나 철심까지 동원해서 고통을 가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 비둘기들은 아무 잘못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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