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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알메주&된장 만들기요리 2022. 1. 14. 18:17
플라스틱 포장재를 쓰는 것에 거부감이 생기고부터 독일 살면서 제일 힘든 것이 한국 식자재를 구하는 일이다. 먼 거리를 오다 보니 당연히 플라스틱 포장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제는 아시아 마트에 가도 딱히 살만한 것이 없다. 유리병에 든 비건 김치나 중식 소스들 (이것도 뚜껑 부분에 플라스틱 비닐이 씌워져 있음) 정도. 간장은 오히려 독일 마트에 가면 유리병에 든 뚜껑만 플라스틱인 제품들을 구할 수 있는데 주로 일본 혹은 중국 회사 제품들이다. 된장도 자주 없고 엄청 비싸지만 비오 마트에 가면 유리병에 판다. 고추장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아 지금까지도 아시아마트에서 보이는 제일 큰 사이즈로 사서 쓰고 있다. 다 쓰고 남는 플라스틱 통을 처음에는 세탁세제를 담는 통으로 쓰거나 하는 식으로 버리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그마저도 포화상태라 지금은 그냥 버린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나처럼 해외에 살면서 직접 된장을 만들어 먹는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이런 영상이 꽤 있지만 이번에는 유독 혹했다. 알메주라는 것을 이용해서 다른 것 필요 없이 소금과 물만을 이용해서 만들기 때문이었다. 알메주에 필요한 것도 백태와 황국균, 전기장판 딱 이 세 가지였다. 백태는 어차피 두부 만든다고 제로 웨이스트 샵에서 항상 사놓기 때문에 집에 있었고 황국균은 찾아보니까 독일 이베이에서 파는 사람이 있었다. 한번 만드는데 한두 큰 술 정도 필요할 뿐이니까 한번 사두면 여러 해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전기장판은 없지만 독일 집이라면 대부분 있는 하이쭝이 있다. 구미가 확 당겼다.
내가 참고한 알메주 만들고 된장 담그는 영상들 링크:
알메주 만드는 영상: https://youtu.be/H-3OytXw98k
장 갈라서 된장&국간장 만드는 영상: https://youtu.be/kAwmTgKUPA8
바로 알메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1. 먼저 하룻밤 (최소 12시간 이상) 불려 놓은 백태를 냄비에 삶는다.
나는 밥솥이 없어서 브레터라는 독일식 큰 냄비에 삶았다. 중불에서 2시간 정도 푹 삶는다. 손가락으로 누르면 바로 짓이겨질 정도로 삶아야 한다.
2. 커다란 쟁반에 천을 깔고 콩을 펼쳐 놓아 40도가 될 때까지 한 김 식힌다.
조리용 온도계가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없기 때문에 감으로 ㅋㅋㅋㅋ 깨끗하게 씻은 손으로 한알 만져본 뒤 못 만질 정도로 뜨겁지 않다 싶을 때까지 기다렸다. (내 손가락들 미안)
3. 황국균을 뿌린다. (콩 1kg에 황국균 10g, 약 한 숟가락)
나는 당연히 콩의 양을 모르기 때문에 이것도 감으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처음 하면 좀 넉넉히 뿌리라고 해서 나는 두 숟가락 뿌렸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콩을 살살 굴려가며 균과 골고루 섞이도록 했다.
4. 또 다른 수건을 물에 적신 후 덮는다.
나는 그릇 닦을 때 쓰는 수건을 썼고 잘 된다.
5. 전기장판 온도를 37도에 맞춰 놓고 얇은 이불을 덮는다.
나는 하이쭝 온도를 1-5 중에 3 정도에 두고 이불을 덮었다. 확실히 하이쭝은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고 확 올랐다가 온도가 오르면 아예 꺼지는 식이기 때문에 내 경우에는 영상에서 본 것처럼 균이 완전 하얗게 퍼지지는 않았다.
6. 12시간 뒤, 6시간 간격으로 콩 아래 위로 공기를 주입하고 위에 덮은 천을 물에 적셔 습기를 유지한다.
잘되면 하루 24시간 만에 끝내던데 나는 꼭 이틀 48시간이 걸린다. 아무래도 온도가 일정치 않아서 그런 것 같다. 하루 만에 끝내면 냄새가 거의 안 나는데 나는 이틀 차에 살짝 콩 내가 났다. 예전에 이모집에 갔을 때 한쪽 방에 메주가 잔뜩 있었는데 그때 맡았던 냄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지만 우리 집 독일인은 냄새가 고약하다고 아주 난리가 났다. 나는 이 방에서 잠도 자고 다함ㅋㅋㅋㅋㅋㅋㅋㅋ
7. 천을 걷어내고 이틀간 말린다.
이 과정이 바로 된장을 담는 경우에도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모를 때는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좋으니까ㅎㅎ 이틀간 말렸다.
8. 소독한 유리병에 물 1리터에 소금 200그램 비율로 소금물을 만든 후 알메주를 넣는다.
유리병은 깨끗이 닦아 뜨거운 물이나 알코올로 소독해서 준비한다. 나는 뜨거운 물을 부어 소독했다. 소금의 양은 각자의 기호에 맞게 살짝 덜 넣는 경우도 봤지만 나는 정량대로 넣었다. 감칠맛을 내기 위해 이것저것 넣는 경우도 있는데 그냥 물로 만들어 본 결과도 아주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그냥 물로 계속 담고 있다.
9. 35일에서 60일간 혐기성 발효시킨다.
여름에는 35일 만에도 발효된다고 하지만 발효는 오래 할수록 좋다고 생각해서 꼭 60일 이후에 장 가르기를 한다. 경험상 특히 국간장같은 경우 장가르기를 한 후에도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맛있어진다.
10. 장가르기
드디어 장을 가른다. 나는 쏨땀용 절구가 집에 있어서 이걸로 찧어서 된장을 담고 국간장을 내었다. 그런데 국간장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왜냐면 시중에 파는 국간장과 맛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조금 알아보니 시중에 파는 간장에는 그 종류에 상관없이 산분해 간장과 식품첨가물이 든 혼합간장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맛이 다른 거였군. 나는 그냥 집간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간장의 경우 만든 직후에는 그냥 된장을 물에 푼 것 같은 맛이 난다. 그런데 냉장고에 한몇 달 더 두고 먹어보니 그사이 숙성되었는지 깊은 맛이 더해져 한식 요리에 감칠맛을 낼 때 연두 못지않은 조미액의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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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분해 간장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블로그 글: https://m.blog.naver.com/riche1597/221608692429
<만드는 과정을 찍은 사진들>
내가 생각보다 기록을 제대로 해놓지 않았었구나... 다음에는 더 잘 기록해두는 것으로 하고 일단 있는 사진들을 공유해본다. 작년 2021년 봄부터 올해 1월 겨울까지 세 차례 알메주를 만들어 된장을 담갔고 그때 찍어둔 사진들이다.
삶은 콩을 황국균에 섞은 모습. 이제 배양 시작! 황국균을 섞은 콩 위에 젖은 천을 덮어둔 모습 그 위에 담요를 덮었다. 약 48시간이 지난 후 황국균이 퍼진 모습 소금물에 담은 모습 두달 뒤 장가르기하는 모습 쏨땀 만드는 절구통에 된장 빻기 백태가 들어있던 자리에 된장이 들어갔다! 이것이 집간장! 처음에는 뽀얗던 색이 시간이 지날수록 어두워진다. 그만큼 맛도 깊어짐 <아래 사진들은 된장&간장으로 맛을 낸 요리들>
발코니 텃밭에서 재배한 시금치를 데쳐 된장과고추장을 섞어 만든 양념에 버무렸다. 역시 발코니 텃밭에서 재배한 깻잎과 직접 담근 된장이 들어간 쌈밥 된장국에도 당연히 된장과 간장이 들어갔다. 배추찜이나 배춧국도 자주 먹는다. 된장으로 만든 짜장면. 된장과 간장을 설탕과 함께 기름에 한번 볶아서 소스를 만들면 묘하게 짜장 맛이 난다. 간단하게 야채밥을 할 때도 연두 넣듯 집간장을 넣으면 감칠맛을 더해준다. 이밖에도 무조림도 자주 해 먹는데 이 요리에는 꼭 집간장을 넣는다. 그 맛이 시중에 파는 간장으로 만들었을 때와 다른 깊은 맛을 내는데 내가 아주 좋아하는 요리다.
알메주는 한국에서 메주를 만드는 방식보다는 일본에서 미소를 만드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한다. 메주에는 황국균만큼 다른 균들도 많이 들어 있어 맛도 더 진하다고. 하지만 그만큼 배양할 때 온도, 습도, 공기 등 환경을 제대로 만들어 주지 않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아서 나처럼 해외에서 마당 없는 집에 사는 사람에게는 메주 만들기는 쉽게 손댈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물론 우리 이모는 아파트에서 메주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처음에는 플라스틱을 좀 덜 써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던 일이 이제는 그에 더해 만드는 재미와 그 맛에 빠져하는 즐거운 취미가 되었다. 요즘에는 된장에도 이것저것 넣어서 비건은 따로 찾아서 먹어야 한다던데 (뭐가 그렇지 않겠냐만) 대량생산을 통해 제품 생산에 들이는 시간과 노동력을 아끼는 만큼 떨어지는 맛을 동물을 죽여 채운다면 그것이 누구를 위한 시스템인지 모르겠다. 모두에게 노동에 맞는 대우를 하고 여가시간을 늘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그 시간과 노동력을 동물을 죽이지 않고 맛있고 건강하게 먹고사는 삶을 만드는 데에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 보다 많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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