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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만들자!발코니 텃밭 일지/2021년 2021. 5. 15. 22:44
음식물 쓰레기와 물, 공기, 미생물이 영양가 없는 흙을 퇴비로 만들었다. 흙은 사실 도처에 널려 있다. 아스팔트와 포장도로, 잔디로 뒤덮인 도시에서는 보기 힘들 수 있지만 조금 나와서 숲이나 산으로 가면 온천지 흙이다. 하지만 이 흙 내가 가져다 써도 되는 걸까? 답은 "안된다"이다. 산림 감시인 Revierförster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자연보호구역이 아닌 경우 적은 양이라면 가능하긴 하다. 거주인구가 적은 지역이라면 모르겠지만 많은 인구가 밀집 거주하고 있는 도시에서는 이런 식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산림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현대인은 흙을 돈주고 산다. 이럴 때 작더라도 정원 있는 집에 살고 싶은 마음이 커지지만 어쩌랴, 지금은 발코니가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작년 발콘 텃밭을 구상하고 호흐 베트와 화분들을 준비한 후 오비이에서 집까지 버스 타고 이고 저서 흙 포대 나르기만 세 번을 했다. 40L에서 70L까지, 호흐 베트와 화분을 30cm 높이로 가득 채우려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양의 흙이 필요했다. 오비이에 가보니 흙도 종류와 브랜드가 다양했다. 식물 종류, 식물 성장과정 등에 따라 나누어져 있었다. 나는 흙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으므로 포장지에 적혀있는 대로 Hochbeet, Aussaaterde, Bio 이런 키워드를 보고 선택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눈에 띄는 마크가 있었다. 바로 "Torffrei". 뭔지는 몰라도 무첨가라고 하면 해로운 거니까 넣지 않았다고 저렇게 강조를 해놨겠지 싶어서 Torffrei 표시가 있는 흙을 골라서 구입해 왔다.
집에 와서 뜻을 찾아보니 Torf는 한국어로 토탄 혹은 이탄이라고 하며 영어로는 피트Peat라고 한다.(식물 키우는 사람이라면 피트모스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탄은 낮은 온도로 인해 죽은 식물들이 분해되어있지 않은 상태로 쌓여 만들어진 토양을 말한다. 그리고 이탄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습지를 이탄습지 Peatland라고 한다. 이탄은 막대한 양의 탄소를 함유해 기후변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 저장고' 역할을 한다. 이탄습지는 지구 전체 표면적의 약 3%밖에 되지 않지만, 여기에는 전 세계 탄소량의 3분의 1이 축적돼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탄습지는 보통 고위도 지방의 춥고 습한 지역에 있어 이곳에 서식하는 식물의 광합성은 활발하지 않다. 따라서 유기물 분해 속도가 매우 낮아, 이산화탄소는 배출되지 않고 땅속에 천천히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이러한 이탄습지의 환경적 역할을 고려하지 않고 경제적인 작물재배를 위해 무분별하게 땅을 파헤쳐 오다가, 이 때문에 땅 속에 저장되어 있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어 지구온난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이탄 무첨가 표시 Torffrei가 나오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퇴비를 만드는데 드는 시간, 노동력, 비용을 아끼기 위해 농가에서 피트모스를 주원료로 한 인공토양이 흔하게 쓰인다고 한다. 결국 우리가 먹는 작물 역시 기후위기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작년 여름부터 퇴비만들기에 관심을 가지고,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이엠 용액과 낙엽, 구입한 흙을 이용해 퇴비 만들기를 시도했다. 커다란 플라스틱 통을 사서 그곳에 퇴비로 사용 가능한 음식물쓰레기를 모아 넣고 흙과 낙엽을 덮고 이엠 용액을 뿌리는 식으로 가득 채웠다. 하지만 2-3개월이면 완성되어야 할 퇴비가 겨울이 되어도, 올해 초가 될 때까지도 썩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뚜껑을 열 때마다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가 났다. 역시 퇴비 만들기는 쉽지 않구나,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올해 초 다시 텃밭을 가꿀 계획을 세우면서 저 처치 곤란한 퇴비 통을 버릴까 어쩌면 좋을까 고민하다 작년의 내가 중대한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혐기성이라고 해도 퇴비화 과정에는 공기주입이 필수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도시에서 퇴비 만들기가 힘든 이유는 냄새와 벌레, 쥐와 같은 작은 동물이 꼬이는 것 등이다. 그래서 통을 사서 뚜껑을 닫아 밀폐시키라는 것이었는데 그다음 내용을 스킵해버린 것이다. 자주는 일주일에 한 번,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흙을 뒤엎어 공기를 넣어 주라는 것! 통이 크고 무거우니까 그냥 방치해 놓았더니 공기가 안 통해서 퇴비화 진행이 거의 되지 않은 것이다. 2월 경에 이 사실을 깨달은 뒤, 나는 일단 호흐 베트들은 퇴비 통으로 쓰고 화분에만 씨앗을 심어서 실내에서 모종을 기르기로 했다.
종이상자로 퇴비통을 만들었는데 상자가 너무 커서 뒤집기 힘들 것 같다. 그리고 모르고 뚜껑 부분을 잘라버렸다. 다 차면 호흐베트로 옮겨 줄 예정이다. 퇴비 만들기
재료: 호흐 베트 혹은 튼튼한 종이 상자 또는 화분, 음식물 쓰레기, 작년에 쓴 영양가 없는 흙, 낙엽, 이엠 용액
1. 퇴비 통을 준비한다. 무엇이든 팔 길이보다 깊지 않은 것, 종이 상자나 화분이라면 그리 크지 않은 것을 준비한다. 종이 상자는 아랫면이 젖을 수 있으니 밑에 다른 종이상자나 받침대를 둔다.
2. 음식물 쓰레기 중 고춧가루나 소금기가 있는 것, 씨앗이 있는 것, 만약 논비건이라면 동물성 재료는 뺀다. 커피가루, 밀가루, 찻잎 등도 쓸 수 있다. 가능하다면 잘게 잘라서 준비한다.
3. 준비된 음식물 쓰레기를 한 층 깔고, 낙엽을 넣고 흙으로 덮는다. 그리고 이엠 용액을 분무기를 사용해 뿌린다. 분무기가 없다면 그냥 뿌려도 된다. 이엠 용액은 쌀뜨물에 배양해서 쓰면 한 번 사서 꽤 오래 쓸 수 있다. 없다면 그냥 물을 넣자.
4. 이대로 통이 다 찰 때까지 3번의 과정을 반복하고 마지막에 조금 두껍게 흙으로 덮어준 뒤 기다리면 된다. 통은 발코니에 둔다. (실내에서 할 수 있는지는 아직 직접 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조만간 시도해 볼 생각이다.)
5.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흙을 뒤엎어 준다. 종이 상자를 이용하는 경우 상자 윗부분을 박스테이프로 막은 뒤 상자를 한번 뒤집는다. 화분의 경우 흙을 다른 화분으로 옮긴다.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내가 2월에서 5월까지 만들어 본 경험으로는 한 달에서 길어도 두 달이면 음식물 형체가 사라지고 향내 나는 퇴비가 되었다.
6. 퇴비는 햇볕에 하루 정도 둔 뒤에 쓰거나 노지라면 일주일 전에 뿌려주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혹시나 계속 진행되고 있을 퇴비화 과정에서 나오는 가스에 식물 뿌리가 다칠 수 있다고.
낙엽이 없어서 작년에 심고 남은 식물의 마른 가지와 뿌리를 넣었다. 잘라서 넣어줄 걸... 낙엽을 구하기 힘들다면 코팅되지 않은 종이(우체국택배상자)를 잘게 잘라서 넣어도 된다. 악취 나던 흙에서 이제는 향내가 난다. 아랫쪽까지 파보니 아직 퇴비화가 진행 중인 하얗게 곰팡이 핀 음식물 조각이 보인다. 하얀 곰팡이는 좋은 곰팡이다. 그래서 올 해는 흙을 돈 주고 쓰지 않는 현대인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플라스틱 퇴비 통 안에 있던 흙을 호흐 베트로 옮길 때는 악취 때문에 힘들었는데, 그랬던 흙이 고작 한 달만에 촉촉한 퇴비가 된 것을 처음 보았을 때는 너무 기쁘고 신기해서 소리를 질렀다. 퇴비화에 실패는 없다. 퇴비화가 빨리 진행되느냐 느리게 진행되느냐의 차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에게 달갑지 않은 냄새와 벌레 꼬임을 없애는 노하우가 퇴비 만드는 방법이라면 방법인 것이다. 너무 거대해져 버린 인구가 계속 살아남을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발전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정말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길은 무엇인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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