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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세안 도전기
    일상/일기 2021. 8. 16. 05:20

     

     

    "너는 스킨, 로션도 바르지 않는데 피부가 왜 이렇게 좋아?"

     

    파트너 얼굴을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내 피부가 좋다고? 잘 모르겠는데...?"

     

    가만 보니 모공도 좁다. 나는 넓어지는 모공 막기는 애초에 포기했는데.

    역시 오랜 기간 화장을 해온 게 큰가? 나는 독일에 와서도 3-4년은 쭉 화장을 해왔다. 집 앞 마트로 장을 보러 갈 때도 비비크림을 바르고 눈썹을 꼭 그렸다. 입술 색을 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독일 화장품이 한국에서 쓰던 것과 달라서 한국화장품을 택배로 받아서 쓰기도 했다. 유학생 친구들 사이에서는 어떤 클렌징크림이 좋은지와 같은 정보를 공유했다. 아니, 색조화장은 꼭 하지 않더라도 클렌징 폼, 스킨, 로션, 선크림은 기본 아닌가? 세안대 왼쪽에 가득 놓인 화장품과 대조적으로 파트너가 쓰는 오른쪽은 텅 비어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물로만 씻었는데? 로션은 가끔 겨울에 피부가 당기는 느낌 들면 바르고, 선크림은 밖에 오래 있어야 하는 날만 바르고..."

     

    이때 나는 그래도 괜찮은가?라는 물음이 그래도 괜찮다는 확신으로 바뀌고, 여러 시도와 탐구 끝에 나는 화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제모도 싫어하는 사람이고, 이런 사람이어도 괜찮다는 사실을 경험한 후였다. 그리고 비거니즘을 공부하면서 화장품에 들어가는 동물성 재료와 동물실험까지 알게 된 후였지만, 너무나 오랜 습관이었던 일명 기초 제품들: 클렌징 폼, 스킨, 로션에 대해서는 비건 화장품을 찾아 썼지 아예 사용을 줄일 생각은 못했다. 

     

    "내 피부는 이미 화장품에 길들여 져서 안될 거야."

     

    그렇게 계속 화장품을 쓰다가 작년부터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로 결심하면서 클렌징 폼을 비누로 바꾸고 스킨, 로션은 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피부에 이상이 생기는 것을 경험했다. 안 그래도 비누로 씻어낸 건조한 피부에 마스크까지 쓰면서 입 주변이 빨갛게 올라오고 가렵기 시작한 것이다. 로션을 발라봤지만 소용없었다. 매일 마스크를 쓰고 일해야 하는 상황이라 난감했다. 그때 물 세안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이상하게 물 세안이 답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바로 실행에 옮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물 세안만 해도 괜찮다.

     

    일단 입 주변에 있던 피부 트러블은 바로 진정되었다. 하루 세 번, 아침에 한 번, 퇴근하고 샤워하면서 한 번, 자기 전에 한 번 물 세안을 했고, 기름기가 주체할 수 없이 올라온다던지, 뾰루지가 난다던지 하는 일은 없었다. 초반 한 달 정도는 세안 후에 피부가 당기는 느낌이 있을 때도 있었는데 정도가 좀 심할 때는 로션을 발랐다. 건조한 독일 여름 날씨에, 근무지 공기가 무척 건조하고 먼지도 많은 편인데도 이 정도였던 걸 보면 겨울도 걱정할 필요없을 것 같다. 그리고 오히려 활동량이 있는 날은 알게 모르게 땀으로 배출되는게 있어서 그런지 기름이 잘 안끼는데 주말이나 집에 오래 있는 날은 아무래도 샤워를 덜 하고 세수도 덜 하게 되니까 그런 날은 물세안을 하면 눈썹에 하얗게 기름때가 꼈다. 그럴 땐 학창 시절 등교 전 미처 머리를 다 감을 시간은 없을 때 앞머리만 빨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비누로 눈썹만 문질러 닦아낸다. 

     

    올해 1월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8개월 넘게 물로만 세안을 하고 있다. 스킨, 로션도 쓰지 않는다. 지금은 세안 후 피부가 땅기는 느낌도 전혀 없이 나도 피부도 잘 적응한 것 같다. 제일 만족스러운 점은 지출이 줄었다는 것과 비건이면서 플프리인 세안용품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안 시간이 줄어들었고, 세안대 주변이 깔끔해진 것 정도. 물론 피부결이 전보다 좋아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숱하게 바르고 지웠던 과거를 생각해보면....(술 마시고 잠들어서 미처 지우지 못하고 화장한 얼굴로 잠들었던 날들ㅋㅋㅋㅋ) 나는 파트너 피부를 보면서 내가 어릴 때부터 화장품을 사용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좋은 피부를 유지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피부 타입이 다르니 모두가 나와 같은 경험을 하리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나처럼 그냥 편한 게 좋다 하시는 분들은 한 번쯤 시도해봐도 좋을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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