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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엉망진창 독일어(2022.02.11.금요일)
    일상/일기 2022. 2. 12. 14:25

     

    독일어 시험을 보기로 했다. 이미 독일에서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독일어 시험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준비할 때만 해도 외국인 학생의 독일어 실력에 대한 요구치가 그리 높지 않았다.(예술 대학 한정) 나도 포트폴리오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베를린에서 어학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합격 통지서를 받았고, 그때 나는 A1였나 2였나 그 수준을 겨우 마친 상태였다. 보통 B2 이상을 요구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 독일어로 대학 공부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때는 빨리 합격한 것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지만 입학과 동시에 교수가 왜 이런 나를 뽑았는지 원망스러웠다. 학교 다니는 내내 힘들었다. 결과도 좋지 않았다.

     

    학교 다니는 틈틈이 독일어 코스에 등록해서 공부했다. 하지만 학교 공부와 알바, 독일어 공부를 병행하는 일이 정말 쉽지 않았다. 그렇게 브로큰 독일어로 졸업까지 하고 지금까지 그냥 저냥 살고 있는 것.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다. 그저 표현에 한계가 있고 내용을 100퍼센트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다. 특히 글쓰기는 정말 취약하다. 그래도 독일 직장에서 돈도 벌고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사는데 그냥 이렇게 살면 안 되나? 외국인이 이 정도 하면 잘하는 거지. 

     

    2019년 호른바흐사에서 인종차별, 성차별 적인 광고를 냈다. 독일 내 한인 커뮤니티에서 이에 대해 거세게 항의했고 그때 나도 함께 하고 싶었다.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항의글을 쓰고 있는 내 독일어 실력은 그에 비해 너무 초라했다. 일단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쓰고 독일인 파트너인 도미에게 수정을 요청했다. 도미도 대충 상황은 파악하고 있었지만 나의 분노와는 온도차가 있었다. 이 상황이 갑자기 화가 났다. 나 혼자서는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제대로 항의하지도 못하겠구나. 학원에 다닐 여유는 안됐고, 책장 한 켠에 꽂혀 있던 문법책을 다시 보며 독일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독일어 공부의 필요성은 주기적으로 느끼고 그때마다 공부를 새로 시작해도 그것을 지속할 수가 없다. 왜 그럴까? 목표가 뚜렷하지 않아서? 독일어 시험을 볼까? 뭘 위해서? 돈도 드는데... 꼭 필요할까? 항상 이렇게 시간만 흘려 보냈다. 물론 독일에서 사니까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독일어가 느는 부분이 있다. 그 속도가 아주 느리고 느는 실력의 정도가 미미해서 그렇지. 어쨌든 지금은 당장 독일어 시험 통과 서류가 필요한 상황이다. 시험은 싫지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엉망진창 내 인생만큼 엉망인 독일어 실력을 이참에 재정비하고 내 인생도 구원해보자. 이렇게 마음막 먹었는데도 우울감에 빠져 더럽게 방치해뒀던 방을 청소했을 때처럼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서점에 가서 시험 대비용 책을 구입했다. 독일어 책들 앞에는 한식 유튜버로 유명한 망치님의 요리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에서 먹는 한식보다 더욱 한식스러운 요리들을 선보일 때마다 나는 매번 감탄했다. 그리고 그녀의 영어. 딱히 발음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망치님 특유의 당찬 말투 때문인지 그녀의 영어가 나는 너무 좋았다. 독일어로도 번역되어 나오는구나.

     

    오늘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다. 과거의 나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끝까지 한번 보기는 봤구나? 하지만 다시 봐도 역시... 나는 언어 공부는 정말 아니야... 한 페이지 보고 트위터 하고 이러면 안 되지 다음 페이지 겨우 보고 다시 딴짓하고. 이 짓을 3시간 동안 했다. 꾸역꾸역 목표치까지는 해냈다. 첫날부터 이러면 어떡하냐... 그래, 독일에 처음 와서 모든 게 설렜던 그때 같을 순 없지. 공부하다 보면 또 나름의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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