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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과 노숙자(2022.03.13.일요일)일상/일기 2022. 3. 14. 20:39
오늘 아침 트위터 독일 트렌드에 veganer 비건이 올라왔다. 뭔 일인가 싶어 보니 한 비건이 살라미 빵(독일식 햄이 끼워진 빵)을 사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노숙자에게 비건 옵션을 설명했지만 납득시키지 못했고 돈을 주지 않았다는 트윗을 올렸고, 그것을 한 다른 유저가 인용 알티하며 이건 계급주의라며 비건을 나치에 비유했다.
이것을 보고 2가지 질문이 생겼다.
1. 나라면 노숙자에게 돈을 줬을까?
2. 비거니즘은 계급주의인가?
1번에 대한 답은 처음에는 쉽게 내린 것처럼 보였다. 나라면 줄 것 같아. 도미에게 말했다. 하지만 자꾸 더 생각해보니 차라리 몰랐으면 주는데 알고 난 이상 주는게 맞나 싶은 갈등이 나라도 생길 것 같았다. 논비건과 동거 중이면서 내가 장을 보는 날이 더 많지만 내 돈으로 논비건 제품을 사는 일은 드물다. 노숙자에게 다른 옵션을 설명한 것도 그래서 납득이 되었다. 그건 고압적인 자세로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자신의 신념과 배치되면서 오는 갈등을 해결하려는 의지였다. 그것을 어쨌든 노숙자는 거부했고 비건은 그렇게 자리를 뜬 것이다. 거부한 노숙자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적은 환경일 수 있고, 그로 인해 편견이 강하게 생겼을 수 있다. 적은 양을 먹는다면 열량이 더 높은 것을 선택하는 어쩌면 그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비건 살라미의 열량을 잘 모르지만 아무래도 기름 양이 적지 않을까? 이건 내 추측이다.)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나니 내게도 쉽지 않은 문제가 되었다. 그래도 역시 돈을 주기는 했겠지만 다른 선택을 한 비건을 두고 무작정 나치에 비유하는 것은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누구라도 나치 비유를 너무 쉽게 드는 사람 말은 신뢰하기 힘들다.)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 비거니즘은 계급주의인가? 채식은 저렴할 수 있지만 비건은 비싸다. 내가 생각하기에 비건에는 윤리적 소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로 웨이스트, 공정거래, 유기농까지 생각한다면 비싸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고기"의 값이 너무너무 싸다. 인간이 지불하지 않는 "고기 생산"에 드는 비용은 전부 기후위기로 이어진다. 채식도 재료 값만 생각하면 싸지만 요리에 드는 에너지와 시간, 필요한 도구들을 생각하면 싸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요즘은 먹고살만하면 비건하라는 운동권의 말도 들린다. 비윤리적으로 얻은 자원을 윤리적으로 쓰라는 말로 들린다. 애초에 그런 자원을 얻을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 없는 사람들은 그래서 제외된다. 여기에서 꽤 오래 내 머릿속에 박혀 있던 말이 나오는데, 지킬 수 있어서 지키는 신념이라는 말이다. 나는 할 수 있으니까 해. 이건 어쩌면 자기는 그럴 만한 능력이 된다, 자원이 있다, 그리고 윤리적으로 옳은 일을 한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먹고살만하면 비건하라고 외칠 수는 있지만 나는 먹고살만해서 비건한다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내가 지금 계급주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인가? 잘 모르겠다. 동물권을 놓고 이야기를 했으면 종차별에 계급주의가 어디 있냐는 답이 금방 나왔을 것이다. 결국 진보는 비거니즘과 함께 가는 것인데 자본주의 안에서 해결하려다 보니 어려워지는 것 같다.
한국 대선에서는 보수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번에 그를 응원한 사람들의 얼굴을 아프도록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자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이 그들 안에서 갈등을 빚도록 갈라치기하는데 완전 선수다. 인간도 동물의 한 종이고 동물권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인권이 나아지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술은 누구를 위해 발전해 왔는지 자주 생각한다. 살아있는 모두에게 적절한 자원을 분배할 수 있는 기술(구조,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것이 진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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