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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파비누받침과 다이콘 김치
    일상/일기 2020. 2. 5. 02:50

    1. 루파 비누받침

     

    얼마 전에 동네 비오마켓에서 수세미비누받침을 발견하고 마침 찾았던 터라 냉큼 샀다. 수세미는 독일어로 die Luffa라고 하는데 내가 찾은 제품은 내가 알고 있던 구멍 숭숭 난 자연적인 모양이 아니었다. 어쨌든 작은 종이포장재 위엔 깨알같이 수세미의 장점이 어필되어 있었다. "물이 잘 빠져서 비누받침으로 제격이에요!"

     


    하지만 한달이 지나자 "루파"비누받침은 계속 물기를 흡수해 색이 진해졌고 내 비누는 콧물처럼 흐물거렸다. 하이쭝(독일난방기계) 위에도 올려놔 봤지만 소용없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쓸 수도 없는 일. 그러다가 플라스틱제로샵에서 내가 찾던 딱 그 모양의 수세미를 찾았다. 말린 수세미오이를 그냥 숭덩숭덩 썰어놓은 모양이었다. 참외 모양으로 씨가 있었던 자리엔 큰 구멍이 나 있고 나머지는 그물처럼 엉킨 식물조직이 말라 있었다.

     

    눈으로 직접 보니 전에 샀던 받침이 왜 제기능을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전에 산거는 독일의 어느 원래는 친환경적인 솔을 만드는 회사에서 나온 제품인데 수세미오이가 친환경적이고 아시아에서는 설거지할 때 쓰고 비누받침으로도 쓴다는 정보를 얻은 모양이다. 그런데 구멍이 보기 싫었는지 본인들 회사에서 추구하는 디자인과 맞지 않았는지 어쨌든 구멍을 메꾸기 위해 말린 수세미 조직을 납작하게 눌러 골고루 펴고 실로 가장자리를 깔끔하게 바느질했다. 그리고 2유로 정도 더 비싼 가격에 팔았다. 하지만 수세미는 섬유질 자체보다는 조직이 구성된 구조특성 상 물이 잘 빠지게 되어 있는 것 같은데 구멍을 없애고 눌러버린 수세미는 바닥에 물이 그대로 있어 비누가 흐물흐물해지게 만들었다. 

     

    2. 다이콘 김치

     

    몇 달전부터 우리 동네 비오마켓 냉장진열대에 김치라고 적힌 유리병이 보였다. 영자로 das Daikon Kimchi 라고 적혀 있는데 다이콘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김치라고 하니 흥미가 생겨 자세히 보았다. 그런데 안에 보이는 내용물은 내가 생각하는 김치의 모양새와는 영 달랐다. 김치를 매일 먹지는 않지만 필요할 때는 고아시아라는 아시아마켓에서 파는 복김치(정말 맛있다.)를 사거나 갓김치 비슷한 맛이 난다는 샐러리 김치를 만들어 먹었기 때문에 계속 그냥 지나치기만 하다가 최근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장바구니에 넣었다.

    열어보니 얇게 저민 무와 당근이 있었고 열 때 탄산음료 뚜껑을 열 때랑 비슷하게 치이- 하는 소리가 났다. 색도 아주 연한 다홍색과 주황색 사이였다. 맛을 보니 역시나 전혀 맵지 않았고 생강 맛이 강하게 났다. 오묘한 맛이었다. 탄산 느낌도 있었다. 일식집에서 주는 저민 생강 절임 생각이 났다. 하지만 맛는 연하지만 김치의 느낌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다이콘이 일본어일거란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역시 일어로 무라는 뜻이었다! 다꽝! 단무지!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무김치면 깍뚜기라는 소린데 그걸 이렇게 재해석(?)하다니! 일본어와 한국어를 영자로 쓴 음식은 이런 맛이구나. 문득 양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었지만 먹다보니 익숙해져 벌써 거의 다 먹어 간다. 

     

    독일에서 자취하면서 여기서 구하기 쉬운 재료들로 한식 느낌만 나게 먹어 버릇해서 내가 해 먹는 요리들도 출처가 불분명한 것들이 꽤 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한국에 가서 가족들에게 해주면 항상 반응이 시큰둥했다. 어쨌든 요리는 간단하고 맛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있어서 이런 저런 시도를 많이 해보는 편이다. 생활용품도 마찬가지다. 특히 비건 지향 시작하고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시도해보게 된 것 같다. 제품이든 요리든 경험하면서 생산자가 아이디어를 얻어서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해보는 것도 재밌다. 물론 아시아나 제 3세계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마치 자기 것인 양 가공해서 높은 가격을 매겨 파는 유럽인을 보면 그들의 제국주의 역사가 떠올라 흡쓸하게 비웃기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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