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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와 블로그 일기(2022.02.02.수요일)일상/일기 2022. 2. 3. 15:35
저녁에 그날의 그림을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그려 놓은 그림을 보며 어제의 일기를 쓴다.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림은 저녁에도 그릴 수 있는데 글은 저녁에는 피곤해서 그런가 주제가 잘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릴 때는 정신을 반쯤 놓고 손이 가는 대로 놀듯이 그리고, 글은 특히 블로그에 쓰는 글은 일기라 해도 무엇을 쓸까 주제를 정한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고 쓰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
작년부터 종이 노트에 일기를 조금씩 쓰기 시작했는데 주로 생각이 많아 정리가 되지 않을 때, 고민이 있는 날, 부정적 감정을 감당 못할 때 찾았다. 이렇게 쓰는 글은 생각의 흐름과 글이 거의 동시에 진행되어서 막 펼쳐졌다가 마지막에는 글과 함께 정리되기도 한다. 사실 대부분의 날은 그냥 흩어진 채로 끝난다. 그러다 올 해 블로그를 새롭게 둘러보면서 여기에 일기를 써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미 일기장에 쓰고 있는 게 있는데 굳이 블로그에도 쓸 필요가 있을까 싶어 망설였지만 실행으로 옮긴 이유는, 올 해부터는 일기를 매일 써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지배할 때만 일기를 쓰다 보니 지난 일기를 읽으면 내가 너무나 힘들고 불행했던 순간만 기록되어 있어서 보면서 마음이 힘들고, 매번 같은 고민으로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아 보였다.(실제로 그렇기도 하겠지만.) 분명 365일 중 기분 좋은 순간도 있고, 쉽게 설명하기 힘든 마음과 감정을 경험한 날들이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은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하기도 힘들다. 그렇게 블로그에 매일 일기를 쓰다 보니 아직 며칠 되지 않았는데도 기록의 양 말고도 일기장에 적는 것과 다른 점을 찾았다.
1. 종이에 글을 쓸 때는 침대에 엎드려서 쓰고 블로그에는 책상 앞에 앉아서 쓴다.
2. 종이에는 글을 쓰는 순간을 기록하고 블로그에는 지난 하루, 혹은 몇 년 전까지 회상하며 쓴다. 이게 무의식적으로 이런 차이가 생기는게신기하다. 둘이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물론 트위터에 쓰는 트윗도 있는데 이것은 종이에 쓰는 것보다 짧고 보는 사람들을 상정하고 쓰고, 타인과 공유, 공감하려고 쓰는 부분이 크단 점이 다르다.
3. 종이에는 나 말고 누구도 보지 않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블로그에는 누군가가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쓴다. 여기서 누군가는 학교 선생님도, 모부도 아니기 때문에 내용 차이보다는 형식의 차이인 것 같다. 종이에 쓰는 일기는 토악질해놓은 것 같은 글이라면 블로그 일기는 내가 먹을 요리 같은 차이.(차이가 너무 큰데?)
그리고 블로그에 일기를 쓰고부터 꿈에 지난 일들이 자주 나타난다. 특히 유년시절을 스쳐 지나간 얼굴과 장소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처음 독일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도 이랬다. 그때 유학 초기에 지난 경험을 새롭게 해석하고 정의 내리는 작업을 의식/무의식적으로 많이 했다. 모부와의 거리가 멀어진 것도 있고 한국을 떠나 낯선 환경에 놓였던 탓도 있겠다. 비록 12명이 한 층에 함께 사는 구조의 기숙사였지만 방만큼은 처음으로 내게 주어진 닫힌 공간이라는 점도 중요했다. 지금 내가 도미가 잠든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글을 쓰는 이유도 같은 거겠지. 도미와 내가 잠자는 시간이 꽤 차이가 나는 게 이럴 때 좋구나?
지금도 머릿속에서 엉킨 실타래가 산처럼 쌓여 있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 실마리를 찾는 날이 오겠지. 누구보다 내 자신에게 보다 솔직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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